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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힌드의 목소리 (2025, dir. 카우테르 벤 하니아): 그런데, 그래서 서글픈 거예요.

그냥_ 2026. 5.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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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인간은 고통에 가까워질수록 감정에 잠식되고, 멀어질수록 책임에서 도망쳐요.

 

 

 

 

 

 

# 1.

 

거리에 대한 영화예요. 당장 보이는 건 물리적 거리예요. 불과 8분 남짓 거리에 있는 소녀와, 그곳에 닿기까지 돌아가야 하는 구조적 거리의 대비죠. 그 사이에 적신월사가 끼여 있고, 감독은 그 끼인 존재들의 분노와 좌절을 진중하게 담아내고 있어요. 소녀에게 다가갈수록 감정은 격해지고 이성은 마비돼요. 소녀에게 멀어질수록 이성은 회복되지만 무력해지죠. 대부분의 플롯을 차지하고 있는 오마르와 마흐디의 갈등이에요. 비난할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서 관객은 답을 찾을 수 없어요.

 

힌드와 적신월사 직원들의 과거 시점이 있고, 이후 그것을 재현하는 현재의 시점이 있어요. 그 사이에 끼여 있는 예술은 무력해요. 인물들은 자신이 직접 재연하는 순간에는 배역의 감정에 다가가지만, 과거의 음성 자료나 영상 자료가 개입하도록 자리를 비워두는 순간 배우로 밀려나요. 마찬가지로 과거의 재연에 다가갈수록 감정은 격해지고 책임은 희석돼요. 자료가 등장하면 책임은 커지지만 감정은 휘발되죠. 관객은 그 사이에서 어떤 것도 함부로 선택할 수 없어요.

 

영화는 총격을 받은 차량 안에 갇힌 소녀의 사투를 빌려,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모순되어 있음을 보여줘요. 인간은 고통에 충분히 가까워지면 이성을 잃고, 충분히 멀어지면 감정을 잃는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비극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완전히 외면하지도 못한 채 부유하는 비극적인 존재들인 거예요.

 

감독은 이 '닿을 수 없음'을 반복적으로 적층 해요. 가령 청각과 시각은 각자의 위상에서 유리되고, 카메라는 그 사이에 끼여 있어요. 관객은 시각적으로 모든 것을 보지만, 가장 중요한 힌드의 존재만은 목소리로만 들어요. 아직 살아 있던 소녀를 죽었다 오판하고, 죽은 소녀가 살아 있다 착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 모순된 거리감을 실증하죠. 소녀는 영화 말미에 사진 몇 장으로만 등장해요. 우리는 생전의 힌드를 보지만, 그건 힌드를 본 게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는 절대 소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거리감을 들춰낼 뿐이에요.

 

적신월사 직원들은 구조하지 못한 희생자와 순교한 구조대원들의 사진을 붙이는데요. 이 역시 역설적으로 그들을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그 절대적인 무력감을 확인할 뿐이에요. 영화 도입에서 마흐디는 더 이상 대원을 잃는 선택을 하지 않겠다 다짐하는데요. 그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동료를 지킬 수 없었죠. 갈등하던 오마르와 마흐디가 화장실에 기대앉아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무력한 인간이 최소한의 자기 보호를 위해 도피하는 것을 보며, 누구도 그것을 태만하다 비난할 수 없을 거예요.

 

 

 

 

 

 

# 2.

 

소녀는 가족의 주검에 둘러싸여 있고, 라나는 소녀를 안심시키려 가족들이 자고 있다 말하지만 소녀에겐 구원이 되어 줄 수 없어요.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 읊조리는 기도문 역시 소녀를 구할 수 없어요. 삶과 죽음, 종교와 현실, 신과 인간 사이의 머나먼 거리인 거예요.

 

마침내 팔레스타인과 국제 사회의 거리가 돼요. 세계가 팔레스타인을 인식하는 거리는 가까워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오래된 갈등을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죠. 하지만 세계가 그 팔레스타인에 대처하는 거리는 옆으로 쓰러진 8자처럼 무한히 멀어요.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그 대응은 냉소적이거나 휘발적이고, 오마르가 SNS를 활용하려는 동료들을 조롱하는 대목은 그 현실을 조소하고 있어요.

 

하나의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거리가 존재하고, 인간은 동시에 통과할 수 없어요. 적신월사라는 극단적으로 겹쳐진 순간에조차 사건은 유리돼요.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극단적으로 겹쳐 놓은 작품조차 유리돼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극단적으로 겹쳐 있는 저곳에서의 갈등 양상이라는 것조차 그토록 유리된 거예요. 분노와 좌절 아래 깔린 강력한 무력감의 정체예요. 사무실의 투명한 유리벽은 때론 꽉 막혀 너머가 보이지 않는 벽보다 더 절망적이에요.

 

당위로 충만한 영화임에도, 그 당위로만 설명하기엔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영화예요. 그런데, 그래서 서글픈 거예요. 이 영화는 실패함으로써 완성될 수밖에 없어요. 어린 소녀의 실제 목소리를 담은 영화는 만들어질 때부터 상을 예정하고 있고, 실제 세상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시상식에서 은사자상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립박수를 받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금세 잊힐 것이고, 다른 영화에 눈 돌릴 것이고, 힌드와 또 다른 힌드의 목소리는 멀어질 거예요. 끝내 닿지 못한 8분처럼요...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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