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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그게 뭔데 씹덕아 _ 헤일, 시저!, 코엔 형제 감독

그냥_ 2021. 10.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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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앤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걸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죽었겠다. 

 

평론가들은 좋아 죽었을 테고,

대중들은 지루해 죽었겠구나.

 

 

 

 

 

 

 

 

'코엔 형제' 감독,

『헤일, 시저! :: Hail, Caesar!』입니다.

 

 

 

 

 

# 1.

 

걸작 영화 만드는 공식을 알려드릴까요. 이리저리 베베 꼬인 철학 논문을 하나 가져다 살을 붙여 영상화하세요. 참 쉽죠?

 

# 2.

 

철학이 영 복잡하고 어려우시다면 유명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명성을 쌓은 덕에 '까면 무식한 사람'이란 수식어가 붙어버린 몇 감독과 함께라면 이너 서클의 상호 감시와 견제가 무수한 악수의 요청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어렵잖게 목격하실 수 있을테죠.

 

글로벌 PC질에 편승해 당위로 무장한 무거운 주제의식의 드라마를 만들어 고상한 척하는 펜대들을 사상 검증의 교수대에 세우는 것도 효과적일 테구요. 아니면 냅다 고전 명화 레퍼런스를 한 30개쯤 가져다 이리저리 심어두면, 숨은 그림 찾기에 환장하는 그분들로부터 쉽게 극찬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앞다퉈 쏟아내는 허세 코멘트들을 거실 바닥에 늘어놓고 적당히 쓸만한 문장을 가져다 (칸 영화제와는 아무 상관없지만 어쨌든) 월계수 마크로 감쌉니다. 그 아래 짝퉁 도금 별 5개를 마저 붙인 다음 메인 포스터에 왕창 때려 박아 뭔가 대단해 보이는 영화처럼 마케팅할 수만 있다면. 그해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꿈만은 아닌 거겠죠.

 

 

 

 

 

 

# 3.

 

심지어 영화의 주제가 무려 20세기 초중반 고전 할리우드에 대한 예찬이다? 이건 반칙이죠. 이 아이템이라면 코엔 형제가 아니라 라이트 형제가 영화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무조건 극찬을 받았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아-아... 비행기에서 내려온 라이트 형제가 부른 할리우드를 향한 눈부신 찬가.  ★★★★☆

1950년대 냉전 시대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역설적 방법론의 미학  ★★★★☆

어쩌면 라이트 형제가 날개를 꺾고 메가폰을 잡아야만 했던 이유  ★★★★★

이처럼 시대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맥거핀 속에서 클리셰를 비트는 메타포의 향연이라니...  ★★★★☆

 

라는 식으로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열성당원 동지들이 앞다퉈 수령님 만세를 외칩니다. 자신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 증명하는 사상검증이자 얼마나 깊이 있는 시네필인지를 과시하는 씹덕식 지식 자랑일 수밖에 없기에, 평론의 내용이라는 것 또한 어떻게 하면 영화를 효과적으로 정의하고 소개할 수 있을까 보다는 두뇌 풀가동류 <복잡한 문장 만들기 대회> 모범 출전작의 형태로 귀결됩니다.

 

 

 

 

 

 

# 4.

 

시작부터 냅다 까놓고 이런 말하기 민망하지만 평론이라는 역할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전문적으로 영화를 소개하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어야죠. 모든 영화가 꼭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구요. 대중적이지 않다고 해서 나쁜 영화가 되는 건 더더욱 아니죠. 몇 영화들은 충분히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는 외면받기도 합니다. 당장 저만하더라도 <대부>나 <로마의 휴일>, <다크 나이트>, <올드보이> 등과 같은 대중과 평단의 선택을 모두 받은 작품뿐 아니라, <시저는 죽어야 한다>와 같은 마이너 한 작품을 인생 영화로 꼽기도 하니까요.

 

다만 이 영화만큼은 평단과 대중의 선택이 같은 방향으로 갔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영화의 메시지가 대중의 선택을 받을 때 비로소 작동하는 작품이기 때문이죠. 1930~50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물이라는 것이 작품성을 차치한다 하더라도 오락성만으로도 충분히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고전 할리우드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2016년의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마지막 에디 매닉스의 입을 빌린 코엔 형제가 다짐하는 2016년의 헌사 역시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석적인 평론이라면 ‘코엔 형제가 할리우드를 찬양하는 방식’에 함께 올라타 호들갑을 떨게 아니라, “왜 코엔 형제의 진심은 대중에게 전달되지 못한 걸까”를 기능적 측면에서 논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영화를 영화라는 분야에 대한 사상검증과 지식 자랑식 덕질 평가의 함정에서 벗어나 여타 평범한 작품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해석할 수 있을 테니까요.

 

 

 

 



# 5.

 

쏟아지는 슈퍼스타들과 정신없는 전환 탓에 짐짓 복잡해 보이지만 영화는 결국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낭만, 현타, 풍자죠. 1950년대 할리우드가 영화를 만들어내던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열정과 에너지가 승화되어 빗어낸 다양한 장르물들의 매력과, 시대적 모순과 시스템의 한계를 2016년의 시대적 변화에 연결 지으며 한숨짓는 동안의 씁쓸한 현타. 그리고 이를 적당히 말랑하게 통제하여 영화가 영화가 되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풍자성 코미디 말입니다.

 

말미에 감독이 사실상 직접 말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장 연설과 고해성사가 영화의 존재 의의 전부라 주제 의식과 관련해선 딱히 해설의 도움이 필요치 않으셨을 겁니다. 어차피 결말 전까지의 런타임을 때우는 낭만과 현타와 풍자는 모두 관객을 마지막 메시지 앞에 앉혀두기 위한 해프닝일 뿐이고, 그 해프닝이라는 것 대부분은 서사 속에서 주제의식으로 강하게 연결되지 못한 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니까요.

 

 

 

 

 

 

# 6.

 

코엔 형제가 바치는 눈물 날 정도의 절절한 진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이렇게나 지루한 이유는 뭘까.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괴기할 정도로 높은 밀도와, 아이템과 관객 경험의 주객전도를 지목하겠습니다.

 

메시지가 너어~무 많습니다. 메시지를 구축하기 위한 정보량은 그보다 훠얼~씬 더 많구요. 벤허를 필두로 하나하나 짚기 버거울 정도로 무수히 많은 할리우드 고전 영화 레퍼런스들과, 그 레퍼런스들을 때론 오마주로 때론 촬영 기법으로 때론 풍자로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들과, 당대 영화 산업의 철학적-산업적 구조에 대한 은유와 고찰 그리고 반성과, 냉전시대 공산주의와 메카시즘 광풍 등의 시대적 맥락과 그 안에서 비즈니스의 위치와, 새로운 과학 기술의 등장에 따른 매체 환경변화로 인한 불안 등. 각각 장편 영화 하나씩은 뚝딱 만들 수 있을 법한 메시지가 대충 생각나는 것만 하더라도 이렇게나 많은데 그것들을 대부분 수다스러운 대사로 풀어냅니다.

 

특히 납치된 베어드 휘트록이 공산주의자들과 대화하며 공산주의와 메카시즘을 동시에 조롱하는 장면은, 공산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냉전시대 메카시즘과 문화 예술계의 관계에 대한 기초적인 배경지식 없이 생짜로 따라가야 하는 사람들에겐 모르긴 몰라도 대사를 알아듣는 것조차 제법 버거웠을 겁니다. 이쯤 되면 이 파트는 왜 굳이 영화여야 하는 거지?라는 반문이 나온다 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이죠.

 

 

 

 

 

 

# 7.

 

각 아이템들은 '관객의 즐거움'이라는 영화 <헤일, 시저!> 본연의 존재 가치조차 가볍게 압도합니다. 관객에게 흥미로운 경험이나 이야기를 전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재연물로서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먼저 읽힌달까요. 관객을 내다 버린 채 영화가 혼자 내달리는 꼴이니 눈과 귀가 어지러운 것과 무관하게 잠이 솔솔 올 수밖에요.

 

물론 덕분에 때깔이 기가 막히긴 합니다. 연출의 완성도까지 부정하는 건 억지죠. 하지만 그래서 각 소장르물들이 재미있느냐?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미술관에 앉아 멋들어진 그림을 보며 멋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관심 있는 분야의 새로운 학술지를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 그게 장르적 소비재로써 재미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인 것과 같죠. 싱크로나이즈 무비나 선원들의 탭댄스. 서부극. 벤허를 패러디한 헤일 시저 모두에 해당합니다. 해당 장면들이 멋있으면서 동시에 재미까지 있으려면 패러디를 보는 동안 뇌리 속에 각각의 레퍼런스가 함께 재생될 수 있어야 합니다만, 그런 관객층은 너무 특수하고 또 너무 제한적이죠.

 

감독은 결말에서까지 관객에게 한 줌의 공간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영화가 토해내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평범한 관객의 입장에선, 지가 만들고 지가 반하고 지가 훈계하고 지가 반성하고 지가 다짐하고 지가 결론짓고 지 혼자 감동한 다음 휑하니 문 닫고 떠난 영화일 수 밖에 없죠. 무심히 흐르는 앤딩 크레디트 위로 마지막 당당히 앞으로 걷던 '에디 매닉스'의 뿌듯한 표정을 한 감독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외에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달까요. 코엔 형제 감독, <헤일, 시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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