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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베이비의 죽음 _ 시바 베이비, 엠마 셀리그만 감독

그냥_ 2021. 9.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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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욕 아닙니다.

 

 

 

 

 

 

 

 

'엠마 셀리그만' 감독,

『시바 베이비 :: Shiva Baby』입니다.

 

 

 

 

 

# 1.

 

[시바 Shiva]는 유대교식 장례문화의 일종으로 친인척이 사망한 경우 Aninut이라는 이름의 장례 절차를 치른 후 가지게 되는 7일간의 애도기간을 뜻합니다. 애초에 시바라는 말부터가 히브리어로 숫자 7을 뜻하죠.

 

솔직히 저나 여러분이나 피차 처음 들으셨을 겁니다. 어지간해선 한국인이 유대교 문화에 익숙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엄밀하게는 '장례 후 고인을 보내는 동안의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기간'이라고는 합니다만, 우리 입장에선 그냥 장례식과 동의어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영화를 즐기시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 2.

 

어쨌든 시바가 열렸습니다.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참석하긴 했지만 누구의 죽음 인지도, 어떤 사람의 죽음 인지도 모르는 눈치입니다. 주인공 '대니얼'이군요.

 

좁은 집엔 온갖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유대인 특유의 끈끈한 관계 중심적 - 규범 중심적 사회관이 짙게 드러나는 가운데, '데니얼'은 이 자리가 너무도 불편한, 그들과 조금은 다른 궤도의 이단아처럼 보입니다. 무리 안에서 사람들은 다시 서로를 평가하고 비교하고 또 경쟁합니다. 특히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인 듯한 '마야'와는 사이가 썩 좋지 않아 보이는데요. 어째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겹쳐 보인다 싶었더니 둘은 예전 연인 사이였군요.

 

곧 새로운 손님이 오는데, 저런. 방금 전까지 섹스를 나눴던 내연남 '맥스'가 등장합니다. 가족들에게는 가족들에게 대로, 내연남에게는 내연남에게 대로 온갖 거짓말들을 늘어놨는데요. 심지어 독신인 줄만 알았던 이 남자는 유부남이었답니다? 그런데 아이도 있네요? 네? 마누라가 아이를 데리고 이곳에 오고 있다구요?

 

 

 

 

 

 

# 3.

 

감당할 수 없는 욕망과 그로인한 불안입니다.

 

얼핏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영화 도입에서부터 '대니얼'은 내연남 '맥스'와 섹스를 하는데요. 격정적인 섹스를 즐기는 그녀의 첫 대사는 "대디"입니다. 가장 어른스러운 행위가장 아이 같은 언어가 중첩된 등장이죠. 감독은 그녀를 이율배반적인 정서의 충돌로 소개입니다. 섹스가 끝난 후 맥스가 용돈을 쥐어주는 걸 잊은 눈치입니다. '대니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습니다. 그녀는 몸을 팔아 돈도 벌고 싶지만, 그렇다고 돈을 달라 말하며 자존심을 구기고 싶지도 않아하는 인격입니다.

 

# 4.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그녀의 거짓말들이 하나둘 탄로 나게 됩니다. '맥스'에겐 로스쿨을 다니고 있다 말했지만 사실은 여성학 전공자였고, 그마저도 경영학을 겸하고 있노라 거짓 허세로 치장하기 바쁩니다. 몸을 팔아 돈을 버는 동안 가족에겐 보모일을 했노라 거짓말을 했고, 그 와중에 '맥스'에겐 남자가 너뿐은 아니라 허세를 부리기도 했죠. 면접이 줄줄이 잡혀있다 말하지만 이 역시 거짓말이었고, 일자리도 돈도 없는 주제에 '맥스'의 아내 '킴'에게 청탁하는 순간은 또 수치스러워 어쩔 줄 몰라합니다. 화장실에서 나체 사진을 찍어 '맥스'에게 보내는 장면은 특히, 이 인물이 그 어느 것도 잃고 싶지 않아 하는 욕심쟁이임을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 5.

 

감독은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그녀를 '아기 Baby'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도 <시바 베이비>죠.

 

시바에는 '킴'이 데려온 아기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만,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내내 카메라는 줄곧 아기가 아닌 '대니얼'을 담습니다. 관객이 듣고 있는 그 울음은 '대니얼'의 울음이라는 거죠. 시바에 찾아온 베이비는 '맥스'의 갓난아기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아이. '대니얼'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과 불안에 대한 영화인 것만은 아닙니다. <프란시스 하>와 같은 젊은이의 불안 그 자체에 대한 진득한 탐구라기보다는, 누적된 불안과 욕망이 만들어낸 가공할 법한 범사회적 압력의 위력에 주목하는 작품 쪽에 보다 더 가깝습니다. 짓누르는 힘에 못 이겨 무언가를 선택하기까지의 박력과, 그렇게 무언가를 포기하는 순간 응축된 스트레스의 배설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작품이라는 뜻이죠.

 

 

 

 

 

 

# 6.

 

감독은 좁은 집 안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몰아넣고 최대한 얼굴과 얼굴을 가까이 맞대게 합니다. 구도도 편집도 모두 화면에서 인물들의 밀도를 최대한 부풀리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화 초반 지나가는 사람에게 밀려난 '대니얼'은 삐져나온 못에 창상을 입는데요. 감독은 일련의 사회적 압력에서 밀려나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를 직관적인 물리적 상흔을 통해 선언적으로 묘사합니다.

 

작품이 전개되는 동안 '대니얼'은 상처가 나고 면박을 당하고 망신을 당하고 커피를 뒤집어쓰고 울고 넘어집니다. 사회적 관계의 측면에선 명백히 하강의 서사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녀가 짊어지고 있던 욕망은 때론 강제적으로 때론 자의적으로 하나둘 정리되며 홀가분한 인격이 되어갑니다. 역으로 정신적 안정의 측면에선 꾸준한 상승의 서사라 할 수 있겠죠.

 

'대니얼'이라는 한 개인의, 겉모습은 추락하고 내면은 상승하는 교차적 서사가 낳는 마찰. 양립할 수 없는 모든 것들과 비현실적인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가지려던 욕망이 압력에 못 이겨 파괴되는 순간의 에너지. 한없이 부끄러운 순간과 그보다 더 수치스러운 순간들의 정서. 망가지는 모습과 역설적으로 대조되어 홀가분해지는 카타르시스는 작품 고유의 매력이 됩니다.

 

 

 

 

 

 

# 7.

 

시바가 정리되고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만, 감독은 마지막까지 '대니얼'을 놓아줄 생각이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시바가 끝남과 동시에 모든 인물들이 헤어진다면, '대니얼'이 겪은 압력은 그저 특별한 사건이 만들어낸 특별한 사고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감독은 다시 '대니얼'을 둘러싼 모든 인물들을 좁은 차에 구겨 넣습니다. '대니얼'은 결코 욕망과 선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녀의 시바가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차에 올라탄 '대니얼'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불편한 표정의 '맥스'와는 달리 그녀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습니다. '마야'와 손을 맞잡으며 작품은 마무리되는데요. 돈과 내연남과 동성애인과 로스쿨 커리어와 자존심까지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싶다 떼를 쓰며 우는 베이비의 장례식이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대니얼'은 더 이상 베이비가 아닙니다. 앞으로의 그녀는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지기 위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할 줄 아는 어른이 되겠죠. 성장입니다. '엠마 셀리그만' 감독, <시바 베이비>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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