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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사라짐, 그 응답의 부재 _ 일 부코,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

그냥_ 2024. 4. 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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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그 사라짐, 그 응답의 부재가 저에게 매우 강한 감정을 줬습니다."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

『일 부코 :: il buco』입니다.

 

 

 

 

 

# 1.

 

이탈리아 감독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의 연출작이다.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으로, 심사위원장 봉준호와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가 극찬한 작품으로 소소한 이목을 끌었다. 전작 <네 번(2010)>을 촬영하며 겪은 일화는 10년 후 신작의 계기가 되었다 한다. 칼라브리아 지역의 시장에게 남부 이탈리아 산악 지역과 동굴을 소개받은 예술가는 처음엔 회의적이었으나 구멍 속으로 돌을 던지자마자 강한 영감을 받았다 회고한다. "바닥이 너무 깊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라짐, 그 응답의 부재가 저에게 매우 강한 감정을 줬습니다."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무성 영화에 가까운 이미지 중심의 정적인 영화다. 관찰적이기도 하고 기록적이기도 하다. 전진하진 않지만 멈춰 있지도 않다. 두려움을 주진 않지만 긴장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고요하고 명상적이지만 답답하지는 않다. 난해하지 않지만 여느 작품보다 입체적이고 우주적이다. 몇몇의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흔한 자막도 음악도 없다. 탐험가들의 가쁜 숨소리, 스케치하는 연필 소리, 다양한 동물과 날벌레 소리, 명징하게 울리는 목동의 부름, 멀어지는 불꽃의 타들어가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의 일정한 반복은 그 자체로 신비로운 사운드트랙이 된다. 꾸밈없이 위대한 남부 이탈리아의 대자연을 고스란히 담는 것도, 빛의 부재를 빛으로 담아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촬영 감독 레나토 베르타의 도움으로 세심하게 포착해 경건하게 담는 데 성공한다.

 

영화는 순수한 직관력과 가능성, 개방성의 세계를 창조한다. 줄거리나 캐릭터보다는 귀를 간지럽히는 사운드와, 마치 도기의 그것 같아 보이는 동굴의 질감, 그 흔적을 쓰다듬듯 탐미하는 빛의 손길, 평화로움에 숨겨진 심연이라는 수직 동굴의 지질학적 의의에 집중한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가 아니다. 이미지는 스스로 완전하다. 감독은 의미나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관객에게 스스로 생각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 2.

 

1961년 이탈리아 남서쪽 끝 칼라브리아 비푸르토 수직 동굴 탐사의 재현이다. 밀라노의 탐험가들은 본격적인 탐사에 앞서 남부의 어느 마을을 잠시 들린다. 북부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건설될 무렵, 남부에서는 동굴학자 그룹의 자연 탐사가 이루어짐이 대비된다. 전반부는 북부와 남부의 대비로도, 물질과 자연의 대비로도 이해할 수 있다. 북부가 현대성을 과시하는 동안 남부의 마을에는 여전히 구 세계가 보존된다. 흑백 티브이 속 철제 마천루와 대비되는 돌로 된 집들이 산비탈에 조각되어 형성된 마을은 상징적이다.

 

탐험가들은 전등을 테스트하며 아이들과 놀고, 성당 후실에서 마을의 기도를 듣고, 낡은 예수상 옆에서 잠을 청한다. 이들은 동굴을 탐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남부 이탈리아의 삶과 그 삶에 투사된 가치를 탐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후의 탐사 역시 높은 건물을 올리는 것과 존재론적 대비를 이룬다. 건축은 설계도라는 계획이 선행되고 목표지향적이며 물질적이고 시각적이고 중력에 저항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은 객체가 된다. 탐험은 지도를 탐색하고 관계지향적이며 정신적이고 청각적이고 중력에 겸허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은 주체가 된다. 본격적인 탐험과 함께 영화는 '늙은 목동의 이야기'와 '젊은 동굴학자의 탐사'라는 이중 서술로 분리된다. 마천루와 동굴이 대비된다면, 노인과 동굴은 동치 되며 두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교차 연결한다.

 

산비탈에 자리한 목동은 늘 같은 곳에서 살아온 듯하다. 푸른 초원과, 거친 바위와, 드넓은 하늘이 만나는 곳. 목동은 관객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을 평생 보고 들어온 신비로운 존재다. 관객이 경험하는 시각적 청각적 경험이 누적된 존재로서 그 자체이기도 하다. 깊은 주름과 거친 피부의 정지된 얼굴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의 질감과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노인이 우마를 부르는 소리는 경계 없이 자연의 소리와 융화되어 동굴 속에서 공명하는 소리와 연결된다. 영화는 비푸르토 수직 동굴을 탐사하면서 동시에 한 인간의 소우주적 풍경에 카메라를 집중한다. 깊이 683미터의 세계에서 3번째로 깊은 동굴의 지도는 평범하게 위대한 어느 늙은 목동의 초상이다.

 

 

 

 

 

 

# 3.

 

탐험의 목적은 존재 그 자체이지 동굴 아래 무언가에 도달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깊이와 웅장함은 그 자체로 의미이고, 웅장함에 대한 기록 역시 그 자체로 목적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동굴을 침잠하며 다다른 곳에는, 막다른 골목과 먼 길을 찾은 사람에게 고생했으니 목이라도 축이라는 듯 고여있는 물 웅덩이가 전부다. 억겁의 시간 동안 단단하게 적층 된 존재의 내면을 서서히 하강하며 침착하게 훑어가는 과정은 본질적이고, 이는 삶을 대하는 본질과 크게 닮아있고 또 닿아있다.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은 다양한 좌표에 중첩된다. 자연을 조망하는 관찰자이기도 하고, 탐사대와 함께하는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동굴이 되어 나의 우주를 탐색하는 탐사대를 온정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작품은 다양한 이해에 열려있다. 일부는 식민지주의 시대 이후 남부와 북부의 괴리가 심화된 이탈리아의 역사적 맥락에 집중할 수도 있다. 일부는 과학적 탐구의 위대함에 매료될 것이고 그것을 구세계와 신세계의 경계에서 이질적인 두 세계가 어우러진 모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일부는 다큐멘터리로서 자연과 동물과 인간이 조화된 우주의 단상으로 이해할 것이다. 일부는 동굴탐사에 빗댄 이름 모를 목동의 인상에 천착해 결과나 목표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반추할 수도 있다. X축의 역사적 맥락과 Y축의 자연의 포용과 Z축의 인생의 함의가 형성하는 영화의 영역은 대단히 사소하고 경제적이지만 동시에 대단히 거대하고 우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착적으로 논리 구조에 얽매이는 것은 썩 무의미하다. 최대한 편안하게 감각하면서 그 감각의 실체를 되짚는 것이 이 같은 영화를 만나는 방법으로서는 최선이다. 몰입도 높은 체험적 영화로서 영화가 묘사하는 아름다움에 감화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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