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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사람은 없다 _ 포퓰레이션 제로, 줄리언 T. 파인더 감독

그냥_ 2023. 11. 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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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다큐멘터리는 진실과 리얼리티를 추구합니다."

 

 

 

 

 

 

 

 

줄리언 T. 파인더 감독,

『포퓰레이션 제로 :: Population Zero』입니다.

 

 

 

 

 

# 1.

 

오래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드웨인 넬슨이라는 사람에 의해 데이비드, 코디, 토마스라는 세 청년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사건이었죠. 용의자 드웨인은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는데요. 정작 재판의 결과는 무혐의로 끝나고, 드웨인은 자유인의 신분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작품의 전반부는 세 청년의 유가족들이 보이는 절절한 인터뷰 영상들로 채워져 있죠.

 

연방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헌법은 사건이 벌어질 경우 해당 사건이 벌어진 주에서 재판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재판은 다시 해당 지역에 소속된 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재판받도록 정해져 있죠. 그런데 하필 사건이 벌어진 지역에는 거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즉 Population이 Zero인 지역이었고. 때문에 재판의 성립 요건이 충족되지 못해 풀려났다는 전개입니다. 해당 사건은 헌법 체계의 구멍을 폭로한 사건으로 인식되었기에, 일체를 치부라 여긴 정부는 사건을 무마해 버리고 맙니다. 영화의 감독이기도 한 줄리언 T. 파인더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되고, 진실에 다가간 끝에 드웨인을 직접 만나며 파국에 치닿는다는 내용의 작품이라 요약할 수 있겠죠.

 

'인내심 강한 사람의 분노를 주의하라.'라는 17세기 영국의 작가 존 드라이든의 명언과 함께 시작하는 데요. 문장 그대로 모종의 이유로 아내와 두 아이를 잃게 된 인내심 강한 한 남자가 벌인 치밀하고 잔혹한 복수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말에 이르러 사건의 진상은 법적, 윤리적, 제도적, 경제적 영역으로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데요. 그 과정에서 '들소를 쫓는 곰'과 같은 복선을 회수하는 것으로 장르적 승부를 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영화의 제목 <포퓰레이션 제로>는 작게는 드웨인이 풀려나게 된 이유이자, 끝내 드웨인마저 자살함으로써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된 사건의 폐허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드웨인이 적대하는 기업 EnRG의 성명으로 말미암아 이들의 인간성이 없다(0)는 것을 지적하기도 하는 중의적인 제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대략적인 서사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사실 작품의 가치는 이야기보다는 그 형식에 있다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겁니다. 영화의 이야기만큼이나 굳이 이러한 이야기를 '모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의미 있을 작품이라는 것이죠.

 

 

 

 

 

 

# 2.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 볼까요. 뇌과학에서는 감정과 이성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합니다. 그저 각자의 사고방식에 따른 이성적 판단만이 있고, 그것이 매우 입체적으로 빠르게 일어난 끝에 신체적 변화가 동반되는 것에 '감정'이라 이름 붙여놓았을 뿐이라는 것이죠. 이 같은 견해 하에서라면 영화라는 것 역시 관객이 어떤 감동을 느끼는지와 무관하게, 이성적 판단을 추동하는 수많은 정보 덩어리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소 서늘하고 씁쓸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죠.

 

영화를 정보 덩어리라 가정했을 때 어떤 장르, 어떤 서사, 어떤 완성도가 되었든 어쨌든 네 가지 차원에서 정보를 조작하게 될 겁니다. 정보의 내용, 정보의 양, 정보와의 거리, 마지막으로 정보를 담아내는 형식이죠. 분류하자면 정보의 내용은 재료라 할 수 있을 테구요, 정보의 양과 거리와 형식은 재료를 가공하는 일종의 레시피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련의 재료를 감독의 성향이 듬뿍 담긴 레시피를 통해 조작하는 행위에 영화적으로 이름 붙인 것이 바로 모두에게 익숙한 <연출>이라 할 수 있겠죠.

 

정보의 양은 사실성과 관계됩니다. 정보의 양이 많으면 사람들은 그 영화를 사실적이라 느끼고, 정보의 양이 적으면 이야기를 환상적이라 여기게 됩니다. 흔히 디테일이니 개연성이니 하는 것들과 관련된 기준이라 할 수 있겠죠. 정보와의 거리는 현실성과 관계됩니다. 정보와의 거리가 가까우면 사람들은 현실적이라 느끼구요, 정보와의 거리가 멀면 현실에서 멀어진 대상으로서 관조하게 되는 식이죠. 밀착감이 중요한 비극 등에서 주로 쓰이는 클로즈업과, 코미디 등지에서 주로 쓰이는 롱쇼트나 하이 앵글 따위를 대비해 떠올리실 수 있다면 썩 훌륭합니다.

 

 

 

 

 

 

# 3.

 

정보의 양이 사실성을, 정보와의 거리가 현실성을 결정한다면, 정보의 형식은 신뢰도를 결정합니다. 관객들은 더 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해서 믿지 않습니다. 더 가까이 있는 정보를 보여준다 해서 믿지도 않습니다. 신뢰도는 오롯이 그 정보를 담아내는 '형식'에 의해서만 결정되죠. 제 일어난 상황을 직접 보여주는 영화에 비해, 다큐멘터리나 뉴스 보도는 정보의 양도 질도 거리도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만 사람들은 훨씬 큰 신뢰를 가지는 데요. 다큐멘터리나 보도라는 형식이 그 정보는 어느 정도 검증된 진실일 것이라 보증한다 여기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사건 직후 체포된 드웨인이 취조당하는 장면입니다. 카메라를 취조실에 직접 집어넣어 바로 옆에서 찍었다면 더 많은 정보 더 가까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감독은 해당 장면을 구태여 저해상도의 cctv로 한 번 걸러 보여주는 '형식'을 선택합니다. 실제 전달되는 정보의 양과 질은 크게 제한되고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형식적 전환이라는 과정을 통해 관객은 마치 드웨인이라는 실존하는 사람이 실제 취조받던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신뢰도의 착각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영화는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의 효과를 최대한 활용합니다. 재연, 인터뷰, 영상 자료 등 천차만별의 화면비와 저화질의 장면들을 고화질의 인터뷰와 교차적으로 편집해 형식적 미를 강조합니다. 영화의 제목인 포퓰레이션 제로는 앞선 단락에서 말씀드린 의미 외에도, 관객의 착각과 별개로 영화 속에 실존하는 인물이 0명이라는 형식적 차원에서의 의미까지 두텁게 내포합니다. 작품 중반 즈음의 대사, "다큐멘터리는 진실과 리얼리티를 추구합니다. 이건 누구의 진실일까요? 살인자, 판사? 당신 자신? 진실은 상대적인 겁니다.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라는 말은 그 자체로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자 관객을 향한 유쾌한 도발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 4.

 

다시 영화로 돌아온다면 결말에서 다소 무리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후반부 몰아치는 전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다소 지루하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겠죠.

 

영화의 핵심이라 말씀드린 형식의 차원에서도 한계는 있습니다. 영화를 본 몇몇의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모큐멘터리라는 것을 알고 보는 순간 형식의 미에 들어갈 수가 없고, 모큐멘터리라는 것을 모르고 본 관객의 경우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배신감을 느껴야 한다는 태생적인 한계는 분명합니다. 누가 어떻게 보더라도 찝찝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마냥 좋은 평을 듣기란 어려운 일인 거겠죠. 줄리언 T. 파인더 감독, <포퓰레이션 제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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