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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가정폭력의 리얼리즘 _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비에르 르그랑 감독

그냥_ 2021. 3. 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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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주장하고 싶다면 그래서 관객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하고 싶다면 이 정도 정성은 들여야 합니다. 그게 메시지의 당사자들과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죠. 제44회 세자르 영화제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수상작. 제7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 미래의 사자상 수상작입니다.

 

 

 

 

 

 

 

 

'자비에르 르그랑' 감독,

『아직 끝나지 않았다 :: Jusqu'à la garde』입니다.

 

 

 

 

 

# 1.

 

사실 이 작품을 본지는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얼추... 한 3년쯤 된 것 같네요. 가뭄에 콩 나듯 있던 예기치 않은 주중의 휴일, 우연히 들렀던 영화의 전당에서 봤었더랬죠. 운 좋게도 당시 해당 관에는 저를 제외한 관객이 아무도 없었고 운 나쁘게도 이 영화는 넓은 영화관에서 홀로 보기에 너무 버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막이 내리고 난 이후에도 작품의 강렬한 충격으로부터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완성도나 감상과는 별개로 구구절절 리뷰하기에 적당한 영화는 아니라 생각했기에 당시에 글을 쓰지는 않았었는데요. 최근 이 작품의 프리퀄이자 감독의 단편 데뷔작인 <모든 것을 잃기 전에 Avant que de tout perdre>를 보게 되는 바람에 마음 깊숙이 묻어뒀던 이 영화가 다시금 떠오르고 말았습니다. 생각난 김에 글을 써보려 하긴 합니다만 글쎄요. 아마도 작품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듯하네요.

 

 

 

 

 

 

# 2.

 

가정 폭력에 대한 영화입니다. 폭력으로 이혼당한 아빠 '앙투앙'의 과도한 집착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엄마 '미리암'과 두 자녀의 스트레스를 아들 '줄리앙'의 시선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작품이죠.

 

사실 가정 폭력이라는 코드는 윤리적으로 판단하거나 당위로서 심판하기는 쉬워도 심리적으로 동화되기에는 쉽지 않은 아이템입니다. 마치 어릴 적 잔반을 남길 때마다 엄마나 선생님으로부터 듣던 지구 반대편에서 기아로 굶어 죽어간다는 아이들의 이야기처럼 말이죠. 경험해 보지 않은 채 성장한 사람은 절대 그 시기로 돌아갈 수 없고, 다른 유사한 경험으로 미루어 반추하기도 쉽지 않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육체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소위 '강 건너 불'일 수밖에 없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미스 백>과 같은 영화들이 가정 폭력을 당한 불쌍한 어린아이를 객체로 설정한 후 이 불쌍한 아이를 돌보게 된 성인이라는 중간다리를 거쳐 아이템을 소화하는 건 그만큼 가정 폭력을 심리적으로 설득한다는 작업이 만만찮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면 아예 상황 자체를 극단적으로 과장하는 경우도 있죠. 부모 모두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데 학교 폭력도 겸사겸사 당하고 있고 애 앞으로 빚도 있고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는 당장 치료받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병에도 걸려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자비에르 르그랑' 감독은 윤리적 공감이나 당위의 심판 대신 심리적 동화라는 무수히 많은 창작자들이 애써 외면해온 정공법을 선택합니다. 화목한 부모의 사랑 아래 장성한 당신에게 가정 폭력의 위압감을 직접 설득하려 합니다. 성공했냐고요? 서두에 말씀드린 무수히 많은 상들이 고스톱 쳐서 딴 건 아니겠죠.

 

 

 

 

 

 

# 3.

 

감독이 선택한 무기는 '장르'와 '리얼리즘'의 결합입니다.

 

감독은 가정 폭력을 지극히 장르적 관점에서 해석하되 가혹할 정도의 침착함으로 대합니다. 장르물들이 으레 보이는 작위적이거나 과장된 묘사, 설정 따위에 대한 강박적 절제가 돋보입니다. 친가 쪽 사람들과의 따뜻해 보이는 시간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거나, 앙투앙이 가진 내면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는다거나, 구태여 폭력적인 분위기의 도시를 만드는 대신 일상성을 최대한 강조하는 식으로 말이죠. 영화 내내 음악을 찾기 힘들다는 점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겁니다. 감독은 철저한 아니 처절할 정도의 현실성만을 추구합니다.

 

리얼리티와는 조금 다릅니다. 다큐멘터리에서 찾을 수 있는 리얼리티가 아닌 장르물로서의 리얼리즘이죠. 리얼리티만 추구했다면 관객 경험 역시 그저 또 다른 관찰자에서 멈춰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감독은 '드라마'와 '스릴러'와 '호러'라는 각기 다른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장르들에 리얼리즘을 결합시킴으로써 장르나 오마주가 가진 고유의 열감을 제거하고 극단적인 건조함과 냉기를 얻는 데 성공합니다. 앙투앙의 얼어붙은 눈과 감독의 냉정한 연출의 시너지는 관객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공포'가 아닌 '정서적으로 합치된 자의 고통스러운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 4.

 

사회문제를 심리적인 접근으로 다룬 작품입니다만 동시에 상당히 정치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작품이 [법의 무책임한 중재]에서부터 출발해 [구경하는 주변인]으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에게 영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도덕적 질책을 곁들인 합리적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공격적인 메시지의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만, 이를 위한 방법론이 너무도 탁월해 저같이 삐딱한 인간조차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무거운 영화이자 피곤한 영화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 것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단편 <모든 것을 잃기 전에>와 장편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둘 모두 보실 것을 권하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장편을 먼저 보고 단편을 본 게 조금 더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모든 것을 잃기 전에 달아나려 했건만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은 폭력. '자비에르 르그랑' 감독, <아직 끝나지 않았다>였습니다.

 

# +5. 배우들의 연기 역시 대단히 탁월합니다. 특히 줄리앙 역의 '토마 지오리아'는 고통스러운 배역 속 어려운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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