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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회색지대의 남자 _ 그 남자의 집, 레미 위크스 감독

그냥_ 2020. 11.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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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바다 건너 영국 땅에 닿은 난민 부부 '볼'과 '리알'의 이야기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삶의 과정 전체를 폭력적으로 압도하는 난민이라는 정체성. 상반된 두 정체성이 과격하게 충돌하는 동안의 심리적 불안을 오컬트 풍의 공포감으로 치환해 감각화한 작품입니다.

 

 

 

 

 

 

 

 

'레미 위크스' 감독,

『그 남자의 집 :: His House』입니다.

 

 

 

 

 

# 1.

 

어느 국가 어느 부족의 어떤 사람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영국에 도착했는가, 새롭게 정착하게 된 곳에서의 생활을 앞두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한 사람들입니다."라는 '볼'의 말은 영국 난민청 직원들에게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진심은 아프리카 난민이라는 이름표 앞에 가볍게 압도당합니다.

 

아프리카의 부족민이지만 이젠 영국의 난민입니다. 자기 부족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타 부족의 징표를 몸에 새겨 살아남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볼'과 '리알' 부부는 부모를 자처합니다만 사실 부모가 아닙니다. 시대의 피해자이지만 개인에겐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전쟁이라는 폭력적 사건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집'을 모두 잃고 회색지대에 내몰린 사람들입니다.

 

 

 

 

 

 

# 2.

 

임시보호소를 떠나는 차량 안에서 어디로 가는 거냐 묻는 '리알'의 질문에 운전기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볼'은 자신이 머리를 깎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병원을 가야 하는 '리알'에게 역시 런던은 황량한 미로와 같죠. 길을 묻는 그녀에게 마을의 아이들은 서툰 영어 발음을 조롱하며 혼란스럽게 장난을 칩니다.

 

벌레가 우글거리는 낡은 집에 도착한 부부에게 난민청 직원은 '잭팟'이 터졌다 말합니다. 이들의 처지는 여전히 위태롭고 곤궁하지만 그럼에도 난민에게 있어 그곳에까지 도달한 것만으로도 잭팟이 터진 것마냥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좋은 사람'은 그저 말썽을 부리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영국을 위시한 유럽인들에게 있어 난민은 그저 언제고 말썽을 부릴 수 있는 사람 정도에 불과합니다.

 

 

 

 

 

 

# 3.

 

극 중 주인공은 부부입니다만 개인적으론 두 명의 개별적 인격이라기보다는 '난민'이라는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회색지대를 벗어나기 위한 두 정서적 방법론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남편 '볼'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고 '영국인'이 되어 기존 커뮤니티에 합류하고자 하는 욕망을 투영합니다. 그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영국 백인의 옷을 사 입으며 교회에서 물자를 받은 대가로 '피터 크라우치'를 위한 노래를 부릅니다. 그는 영국인의 커뮤니티에 편입되는 과정이라 합리화하며 애써 굴종적인 기분을 외면합니다.

 

반면, 아내 '리알'은 이전까지의 문화와 기억을 지키는 것을 넘어 관철시키고자 하는 집착을 대변합니다. 그녀는 커튼을 두른 채 바닥에 앉아 손으로 먹는 음식이 편안하고 영어가 아닌 원래부터 쓰던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고자 하며 딸 '니야가크'가 살아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 4.

 

관념론적 시각으로 영화를 본다면, 부부를 괴롭히는 악마 '아페스'는 전쟁과 피난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 공포 따위의 트라우마. '니야가크'는 마치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 이기적으로 자신들만 살아남은 것만 같은 왜곡된 죄책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페스'와 '니야가크'의 유령은 어두운 밤에만 등장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난민들의 모습은 마치 무던하게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양 보이지만, 이웃들이 잠에든 깊은 밤이면 '트라우마'와 '죄책감'은 생생한 악몽이 되어 되살아납니다.

 

부부는 모두 '아페스'로부터는 고통받습니다만, '니야가크'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상이합니다. 이 점은 두 부부에게 투영된 정체성의 실체를 보다 선명하게 하죠. 과거를 지우고자 하는 '볼'에게 있어 죄책감(니야가크)은 자신의 내면(하우스)을 파괴하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과거에 집착함으로써 보상받는 '리알'에게 있어 죄책감은 자신의 집착을 합리화해주는 안식의 대상입니다.

 

 

 

 

 

 

# 5.

 

'집' 역시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닌 심리적 공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집안에 있다가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로 이동한다거나, 식탁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출은 초현실적 존재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기보다는, 각각 과거의 트라우마가 선명하게 깨어난다거나 가릴 수 없는 허무함과 같은 심리적 변화를 묘사한 시퀀스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겠죠.

 

영화의 제목이 부부의 집이 아닌 『His House』인 건, 이 부부가 개별적인 두 인격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He) 안에 혼재해 있는 각기 다른 인격의 충돌과 화해의 과정이라는 데 대한 암시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 부분은 100% 뇌피셜이지만요.

 

 

 

 

 

 

# 6.

 

작품의 결말은 트라우마(아페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거를 죽이고 영국인이 되고자 하던 욕망(볼)이, 결국 트라우마에게 패배하며 잡아먹히는 위기에 빠지지만, 본인의 뿌리에 대한 집착(리알)이 죄책감(니야가크)을 극복함으로써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함께 구원받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부는 과거 자신들의 과오와 아픔의 역사를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난민으로서 커뮤니티에 적응해야 하는 입장 역시 인정하며 손을 맞잡게 됩니다. 영화는 부부가 물리적인 집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시작해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심리적인 집을 가지는 모습으로 끝맺음됩니다.

 

 

 

 

 

 

# 7.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성취는 주제의식을 둘러싼 서사의 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리알'을 조롱하는 아이들을 흑인으로 설정한 것은 감독이 이 영화의 메시지가 혹여 인종문제와 엮여 혼탁해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조롱할지언정 병원의 위치만큼은 제대로 알려준 건 아이들을 특별히 모진 악당으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상황이 사회적 맥락에서 읽히도록 통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리알'이 병원에서 의사에게 시니컬하고 무례한 반응을 보이도록 하는 장면 역시 난민을 일방적인 피해자와 같은 평면적 존재로 보이게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볼'과 '리알'은 부족 간 전쟁의 피해자입니다만 동시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모녀를 갈라놓고 내팽개친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영국의 커뮤니티가 이들에게 나누고 있는 물자나 친절을 비겁하게 숨기지도 않죠. 감독은 이들 부부를 앞세워 보다 많은 자원을 난민과 나누라는 식의 도덕적 질책을 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볼'과 '리알' 사이의 균형 또한 적절히 잡아냄으로써 감독이 '좋은 난민의 태도'를 성급히 결정짓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섣부른 판단 하의 선악의 규정, 대결 관계, 비용 문제 따위를 모두 내려놓고서. 가치 중립적인 입장에서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말합니다. '난민'이라는 두 글자가 과연 그들 개개인의 시간과 삶과 감정과 인간성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 것인가 재고해 볼 것을 효과적으로 제안합니다. 멋있네요.

 

 

 

 

 

 

# 8.

 

그리고 여기까지. 길게 늘어 영화가 담아낸 난민의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 드렸는데요.

혹시 뭔가 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이 영화가 표방하는 장르가 '심미적 미장센을 즐기는 드라마'가 아니라 '공포 스릴러'라는 점 말이죠. 그럼 왜 드라마 얘기를 이렇게나 길게 했느냐. 아이러니하게도 호러가 시시하기 때문입니다. 네, 안 무서워요. 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호러가 밋밋합니다. 오컬트 또한, 영국 사회와 아프리카 토속 문화를 대조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동원되었을 뿐, 유령들의 분장 코드 이상의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합니다.

 

작품의 분위기에 낚여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호러 영화를 기대하신다면 크게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오컬트 영화는 더더욱 아니고, 사건의 맥락을 쫓는 스릴러는 더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 피난민의 불안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 드라마로 접근하셔서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해 즐기셔야 의미있을 영화입니다. 뭐랄까요. 서정성을 조금 덜어내고 호러 연출을 한 방울 정도만 더한 『문라이트』 같은 느낌? 그 정도를 예상하신다면 썩 나쁘지 않겠네요. '레미 위크스' 감독, 『그 남자의 집』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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