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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시인이 만든 영화 _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 방성준 감독

그냥_ 2020. 10.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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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엄마 정숙은 요절한 아들 도원의 언덕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릅니다. 언젠가 아들이 올랐을 언덕에 올라 아들이 보았을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흘러가는 석양처럼 아들에 대한 기억도 아들이 지나온 시간도 아들을 그리워하는 동안의 슬픔도 그렇게 넘어서려 합니다.

 

 

 

 

 

 

 

 

'방성준' 감독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 :: Passing over the Hill』입니다.

 

 

 

 

 

# 1.

 

짧은 시 한 편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일전에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의 <러빙 빈센트>를 리뷰하며 화가가 만든 영화 같다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 영화는 꼭 시인이 만든 영화 같다는 생각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엄마 정숙이 글을 배워서까지 아들 도원의 시집을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하며 아들을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이야기의 영화입니다. 아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는 매 걸음마다 아들이 보았을 시선과 시간과 관계의 징검다리들을 건너가는 배낭을 둘러멘 엄마의 뒷모습, 남겨진 그녀를 위로하는 처연한 석양입니다.

 

내가 알고 있던 아들과, 친구들이 알고 있는 아들과, 교수가 알고 있는 아들과, 동경하는 시인으로서 기억되는 아들과, 이 모든 이면의 아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새롭게 알게 된 아들과 함께 같은 것을 보게 된 엄마입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그토록 찾아 헤맨 언덕이 멀리 있는 언덕이 아닌 집 앞의 언덕이라는 데 있습니다. 

 

 

 

 

 

 

# 2.

 

섬세한 묘사와 심미적인 공간 표현과 정제된 감수성이 돋보이는 단편입니다. 시니컬한 누군가들에겐 때로 공허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시를 활용해 이렇게나 밀착감 높은 이야기를 구축했다는 건 특별한 성취임에 분명합니다. 산문과 운문의 중간 어딘가의 이야기를, 영화와 다큐멘터리 중간 어딘가의 방식으로 담아냅니다. 서투른 연출이 만든 부산물로서의 날것과 차별화되는 명확히 의도된 자연스러움 덕에, 주인공 정숙이 과격한 정서 표현을 하지 않음에도 높은 현장감이 전달됩니다.

 

공간과 색감과 구도의 표현 모두 주제의식과 인상적인 일체감을 보입니다. 카메라를 크게 둘러 하나의 테이크로 인물을 담아내는 연출은 제한된 여건 하에서 최대한의 운동성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바삐 움직이는 젊은 학생들 사이를 지나오는 엄마의 모습은, 살아생전 알지 못했던 낯선 아들의 이면을 찾아 나서는 엄마의 용기를 표현하는 장면으로도, 무수히 많은 아들의 시간들을 거슬러 되짚는 정서적인 장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죠. 작게라도 엄마의 여정에 최대한 오르내림을 줌으로써 서사적 단계마다의 언덕을 넘는 듯한 뉘앙스를 준다거나, 가로수의 간격을 넘어서는 것과 같은 배치를 통해 작품에 일정한 호흡을 부여하는 것 역시 섬세한 연출입니다.

 

엄마의 이름과 같은 [정숙]이라는 팻말은 분위기를 가볍게 환기하는 위트이기도 하면서, 고요하게 집중을 잡아내는 시퀀스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중의적인 미장센입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의 뒤에 걸린 지하철 [출입구]라는 글귀 역시 유사한 맥락의 연출이라 할 수 있겠죠.

 

마지막 앤딩의 언덕은 대단한 공간입니다. 호들갑을 조금 떨자면 <마더>의 오프닝에서 보여준 김혜자의 들판 못지않달까요. 지평선이 강하게 강조된 언덕을 올라서다 주저 않는 정숙의 모습을 가까이 보여줌으로써 정서적 몰입감을 최대한 끌어올린 후, 연이어 사선으로 미끄러지는 듯한 언덕의 비탈을 멀리서 담아 감수성을 머금은 채 시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연출은, 인상적인 공간을 발견하는 눈썰미뿐 아니라 공간을 명확한 계획하에 활용하는 감독의 능력을 엿보게 합니다.

 

 

 

 

 

 

# 3.

 

물론 여느 작품이 그러하듯 아쉬운 점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의 죽음을 경험한 노년의 엄마가 다른 이유도 아니고 자식의 발자취를 쫓는다는 데, 학교 사람들이 저렇게 매정한 태도를 보이는 건 다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학교 사람들은 나름대로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지만 타인의 진심만으론 대신할 수 없는 당사자의 무거운 발걸음'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을 만들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무신경하고 무례하게 만들어버리는 건 너무 손쉬운 접근이죠. 주변인들의 부족한 진심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면 차라리 정숙이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고 하는 게 나았을 텐데요.

 

선화가 너무 많은 대사와 정서적 분량을 짊어진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박하게 말하자면 이 부분 역시도 너무 쉽게 가는 방식이죠. 온갖 정서적 힌트를 선화가 모조리 제공하다 보니 엄마가 스스로 아들의 언덕을 찾는 게 아니라 엄마보다 더 아들과 교감한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뜬금없이 나타나 모든 힌트를 주고 사라진 게 되고 말았습니다.

 

# 4.

 

시인의 감수성과 섬세함과 진중함과 미감이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상황 묘사에 치중하느라 역으로 자연인 정숙 고유의 심정이 다소 희생한 측면은 부정할 수 없어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다소 편리하게 간 부분이 보인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구요. 다만 그럼에도 24분짜리 단편에 이 정도면 차고 넘칠 만큼 훌륭합니다.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간 후 마지막 언덕에서 엄마가 낭송하는 시는 다른 영화에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종류의 특별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방성준 감독,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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