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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절반은 성공 _ 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 감독

그냥_ 2020. 5.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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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정말이지 맛있는 영화입니다. 배우 '문소리'만큼이나, 감독 '문소리'와 그의 작품 역시 참 매력적입니다.

 

 

 

 

 

 

 

 

'문소리' 감독,

『여배우는 오늘도 :: The Running Actress』입니다. 

 

 

 

 

 

# 1.

 

영화는 3개의 막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파트는 짐짓 화려해 보이는 배우라는 직업의 이면에 숨겨긴 여배우 문소리의 현실적 비루함을, 두 번째 파트는 그런 여배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자연인 문소리의 현실적 곤궁함을 다룹니다. 세 번째 파트는 여배우라는 직업의 철학적 가치들을 돌아보며 일련의 비루함과 곤궁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왜 이 직업을 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소회를 다룬다 할 수 있습니다.

 

파트를 구분케 하는 '막'은 기본적으론 연극의 단락을 세는 단위로서의 막幕으로 기능합니다만 동시에 우리가 그저 화려한 여배우로만 인식하고 있는 자연인 문소리의 껍질로서의 막膜을 한 꺼풀씩 벗겨 나가는 과정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 2.

 

첫 번째 파트는 '나름' 이쁘고 '나이치곤' 매력 있는 중견 여배우의, 소싯적 쌓은 화려한 커리어나 세평과 배치되는 만만치 않은 현실 사이에서의 간극을 유쾌하면서 씁쓸하게 그려내는 코미디입니다. 화려한 도심 속 무대 대신 미묘하게 부산스럽고 수고스러운 산행이 그려집니다. 멋들어진 바에서 마시는 와인 대신 산장에 퍼질러 앉아 마시는 막걸리가 카메라에 담깁니다. 산장 뒤편에 퍼질러 앉아 쏟아내는 푸념과 감독님 앞에서의 간드러진 목소리의 대조가 여배우의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 3.

 

20분간 작정하고 코미디를 쏟아냅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코미디들입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농익은 위트가 가득합니다. 말하는 코미디와 듣는 코미디가 교차되며 고유의 찰진 리듬을 만들어 냅니다. 상황에서 위트를 발견해 대화로 재조립해내는 솜씨가 능숙한 코미디 영화감독의 그것 못지않습니다. 말초적인 개그와 그 뒤에 숨은 쌉쌀한 뒷맛이 일품입니다. 맛깔스러운 코미디가 터질 때마다 그 반동으로서의 페이소스가 뚝뚝 묻어납니다. 좋네요.

 

 

 

 

 

 

# 4.

 

동시에 여배우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상성은 잃지 않습니다. 유려한 편집이나 과장된 묘사 따위 집어치우고 되지도 않은 기교 따위 모조리 집어치우고 높은 현장감에 정석적으로 올인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막을 넘어가며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루기에 앞서 실력으로 재미로 작품의 가치를 검증합니다. 역시 배우 경력 어디 가는 게 아니죠.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건 이런 겁니다.

 

 

 

 

 

 

# 5.

 

두 번째 파트에서는 코미디에 드라마가 더해집니다.

 

중년 여배우 보편의 이야기를 한 꺼풀 벗어던지고서 보다 구체적인 '자연인 문소리'의 드라마를 풀어냅니다. 평범하면서 디테일한 상황 속에서의 역설의 묘가 20분의 짧은 시간이 아쉬울 만큼 가득 담겨 있습니다. 미묘한 뽕짝 리듬이 가미된 자조적 풍자극이자, 그 안에서의 희망적 카타르시스를 능숙하게 담아냅니다.

 

 

 

 

 

 

# 6.

 

스스로 그리는 자신은 늘 바쁘고 피곤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희생적이거나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엄마의 채근을 못 이겨 치과 광고 사진을 찍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식 키우는 건 늙은 엄마의 손을 빌리는 못난 딸입니다. 치매에 걸려 화장실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착한 며느리지만 동시에 그 시어머니에게 통장 비밀번호를 캐묻는 무안함도 감내해야 하죠. 더 이상 '가장 아름답지는 않은' 나이의 여배우에게 무심하게 정육점 아줌마 역을 권하는 감독에 승질을 내지만 정작 유명한 감독의 제의라면 만세를 부르는 자신 역시 무례하긴 매한가지입니다.

 

일을 줄이라는 속없는 소리나 하는 남편이 한대 콕 쥐어박고 싶을 만큼 야속하지만 그래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날 부축할 사람 역시 내 남편밖에 없습니다. 그 사이사이로 '그래도 문소리 정도 되는 배우면 걱정 없이 살 것 아냐?'라는 무심한 이야기들이 대조를 이루면서도 동시에 멋들어진 전원주택이나 투정을 받아줄 매니저를 숨기는 비겁함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인이건 업계 사람들이건 가릴 것 없이 이미지로서 '문소리'를 소비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판매한 걸로 먹고사는 선택을 한 것 역시 자기 자신이라는 걸 비겁하게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 7.

 

비루하지만 징징대지 않습니다.

무례하지만 악의적이지 않습니다.

처절하지만 질척거리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 팔자의 삶이라는 것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정도의 드라마적 균형을 우리의 초보 감독은 멋들어지게 맞춰 냅니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 역시 분노나 연민과 같은 단편적인 감정을 넘어 치열하게 사는 사람의 모습이 주는 깊은 페이소스를 공유하게 됩니다.

 

 

 

 

 

 

# 8.

 

세 번째 파트는 앞선 두 에피소드와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여배우로서의 자신을 상징하는 매니저는 차에서 기다리라 합니다. 자신의 본래 얼굴을 가리는 선글라스는 굳이 한번 썼다가 굳이 다시 벗어둡니다. 그렇게 들어선 장례식장은 누구도 없어 텅 비어있죠. 이전까지의 현실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대단히 관념적인 순간, 관념적인 공간입니다.

 

 

 

 

 

 

# 9.

 

죽은 무명의 감독은 그녀가 초창기에 가지고 있던 '영화인으로서의 이상적 가치들'을 의인화한 존재처럼 보입니다. 감독의 남겨진 유족들은 그런 이상적 가치들을 추구하는 동안 희생될 현실 속 주변의 사람들을 대표한 듯 보이죠. '정락'은 자신이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있던 심정적 치부를 회의적으로 들추는 존재로서. '서영'은 철없고 어리석지만 그럼에도 눈부시게 순수했던 자신의 과거로 이해할 수 있어 보입니다. 희생된 현실(아내)이 자신으로부터 이상(감독)을 뺏어간 과거(서영)의 머리채를 틀어쥐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의 배우 '문소리'의 심정은 고유한 울림을 줍니다.

 

 

 

 

 

 

 

# 10.

 

여배우 '문소리'로서의 자신을 내려놓고 자연인 '문소리'로서의 짐 역시 내려놓고 커리어의 큰 전환점에 앞에 선 배우가 스스로의 선택과 번뇌들을 의인화해 마주하고 있는 공간이라 생각하며 3막을 보면 제법 의미심장합니다. 아이와 함께 죽은 감독의 영상을 보는 동안 단순히 어떤 사람의 사망이 아닌, 관념의 승화이자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찾은 순간이라 생각하면 색다른 감동이 전해집니다.

 

해가 떠오르고 직전까지 투닥거리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2차를 가는 건, 그런 갈등들을 품어내고 한걸음 더 성장하고자 하는 감독의 간절한 소망은 아녔을까요.

 

 

 

 

 

 

# 11.

 

영화의 제목은 『여배우는 오늘도』 입니다만 감독이 정작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 뒤에 숨겨진 (달린다)에 담겨 있습니다.

 

비루함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럼에도 나는 여배우로서 달릴 것이라는 거죠. 『박하사탕』, 『오아시스』, 『효자동 이발사』, 『우생순』과 같은 근사한 작품을 한 아티스트가 영화인으로서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젖히며 쓴 것 중에 이보다 더 유쾌하고 멋들어진 '출사표'는 적어도 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 12.

 

다만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냉정히 말하자면 영화로서의 서사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에피소드 단위로 나뉜 콩트 모음에 가깝달까요. 원래 만들어지게 된 과정부터 그러했기에 당연하긴 합니다만, 단편 영화의 물리적 결합 이상의 화학적 결합은 미미합니다. 여배우로서의 회한이나 페이소스들 역시 '고군분투'라는 테마 하에 파편적으로 수집되어 있을 뿐 구축되고 있다는 인상은 희미합니다.

 

그나마의 아이템들도 본인이 십수 년간 몸담아온 본업에 대한 이야기라 창작이라기보다는 재구성에 가깝습니다. 디테일한 관찰자이자 연출자로서의 감독 '문소리'의 역량은 증명되지만, 창작자이자 이야기꾼으로서의 감독 '문소리'는 아직 물음표라 할 수 있겠네요.

 

개봉하던 당시 영화에 대한 평들은 대부분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라는 것이었는데요. 이는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호평이기도 합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자기가 창조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에 대해선 의문이 남아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 13.

 

하나하나 엄청 맛있는 반찬들로 차려진 멋진 한정식 같은 영화입니다만, 아직 메인 디시는 없이 반찬들만 올라온 밥상이기도 합니다. 정갈한 식사 한 끼로서는 반찬만으로도 차고 넘칠 만큼 훌륭하지만 그래도 반찬만으로 밥을 먹고 나면 뭔가 허전하니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죠. 그래서 영화에 대한 제 평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을 수밖에 없을 듯하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합니다."

 

'문소리' 감독, 『여배우는 오늘도』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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