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불편한 진실과 비관적 성찰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광기 어린 야심
미셸 프랑코 감독,
『뉴 오더 :: New Order』입니다.
# 1.
논쟁적인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을 몰아세운다. 형이상학적인 미술과 헐벗은 여성의 오프닝을 지나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세계, 호화로운 상류층 결혼식과 그 너머 폭력이 뒤섞여 제시된다. 깨끗하고 풍요로운 저택은 견고한 성처럼 보이지만 이미 위태롭다. 직관적으로도 불안한 녹색의 침입이다. 수도꼭지에서는 녹색 물이 흘러나오고 페인트를 뒤집어쓴 손님이 도착하는 등 외부의 오염과 분노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스며들고 있음이 상징적으로 연출된다.
감독은 파티에 모인 상류층 사람들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제를 성실히 묘사한다. 여성들의 화려한 원색 드레스를 통해 풍요와 과시를, 남성들의 고압적인 검은 슈트를 통해 권력과 단절감을 시각화하는 식이다. 반면 그와 대비되는 요소로써 무채색 복장의 하인들은 정해진 공간에 멈춰 있거나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보이는 데, 이는 상류층의 자유로움과 대비되어 제약된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거대한 벽과 문으로 둘러쳐진 공간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장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감옥이자 언제고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취약한 보호막임을 복합적으로 암시한다. 일련의 시각적 이미지들을 밀어붙이는 힘은 과연 대단하다. 미셸 프랑코는 고유의 에너지로 작품을 통제하며 이후 다루게 될 불평등과 파국의 전조를 관객의 뇌리에 각인시킨다.
# 2.
녹색으로 은유된 구체제의 병폐는 불완전한 낙원 내부에서부터 피어나고, 감독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를 파헤친다. 파티의 위선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딸의 수술비를 애원하는 전직 하인의 등장은 대표적이다. 상류층 가족은 그에게 언제 보고 못 봤는지를 반복해 강조하는데 애써 거리를 두고자 함이고 정확히는 '거리를 두라 지시함'이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이에게마저 타산을 따지며 관계의 단절을 요구하는 모습은, 기성의 세계가 인간적인 연대보다 이기적인 계산에 기반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자신들의 풍요로운 삶에 비하면 사소할 20만 페소조차 인색한 모습은 계급적 냉혹함을 정량적으로 비춘다.
임계에 다다른 구체제는 오래가지 못한다. 빠져나가는 마리안을 끝으로 시스템은 장렬하게, 허무하게 붕괴된다. 꾸준히 예고된 파국의 시작이다. 분노와 박탈감에 통제력을 상실한 시위대가 들이닥치고, 이내 전방위적 파괴가 이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혼란 속에서 이전까지 순응하던 하인 중 일부가 거짓말처럼 시위대에 합류, 약탈자로 변모하는 데 그 심정 변화를 특별히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억압받던 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니며 그들의 파괴 역시 시스템의 결과일 뿐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후의 폭력과 파멸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질서의 책임이 될 것임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시위대에 점령된 익숙한 멕시코 시티의 익숙하지 않은 전경들과도 같은 의미다.
한편 파티장이 시위대에 짓밟히는 사이 마리안은 시위대의 질서 한가운데 내던져진다. 혼란 속에 몸을 숨긴 마리안은 수습하러 온 듯 보이는 군에게 넘겨지는 데 이내 그들 또한 또 다른 약탈자였음이 밝혀진다. 귀금속을 빼앗고 머리를 누르는 순간 복면을 벗어던지는 장면은 잠시의 안도감을 짓밟고 위기를 증폭시키는 극적인 연출이다. 구금하러 나타난 군인이 또래의 여성이라는 것 역시 관객으로 하여금 찰나의 희망을 가지게끔 유도한다는 면에서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질서의 기망적인 뉘앙스를 연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 3.
수용소는 처참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처참하다. 비이성적인 질서가 어디까지 폭주할 수 있는지 관객의 눈앞에 두고 직시할 것을 집요하게 강요한다. 이마에 새겨진 숫자는 개인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관리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극심한 폭력을 상징한다. 마치 가축을 다루듯 하다 마침내 가축만도 못한 취급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몰아넣는 장면이 점점 더 가혹하게 이어진다.
성범죄를 비롯한 몇몇의 타협 없는 표현보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들은 복면에 얼굴을 숨기거나 피해자의 고개를 숙이게 해 시선을 차단한다는 점이다. 익명화된 폭력이자 시스템적 억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검은 복면은 상류층이 자신들의 얼굴을 숨겨둔 파티장의 높은 담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가해자의 얼굴을 종종 프레임 밖에 두어 관객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그로 인해 관객 또한 가해자들의 얼굴을 찾아 올려다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느낄 고압감과 무력감을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자, 그로부터 관객 또한 자신이 처한 질서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으며 그 질서가 변화함에 따라 언제고 주인공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압박한다.
보이지 않는 위협에 통제되는 공간은 '질서'란 파악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방향으로도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구체제에서 인간의 생명보다 귀했던 돈은 마침내 총구 아래 약탈의 도구로 전락한다. 터무니없이 오르는 몸값과 능욕적인 약속 파기는 질서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야기는 도달하고자 하는 깊은 나락을 향해 추락하고 또 추락한다.
# 4.
감독은 권선징악 서사를 철저히 거부한다. 마리안의 선의가 그녀를 구원하기는커녕 파멸로 이끈 것처럼, 마르타와 크리스티안의 미약한 연대는 그들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올가미일 뿐이다. 개인의 선량함이나 도덕적 선택이 시스템의 폭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 지, 그 파국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집어삼킨다는 차가운 진실이다.
만약 연민하는 사람이 보상받고 연민하지 않던 사람이 보복당한다면 기존의 질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으로, 이는 기존의 사회 질서(그것이 얼마나 부패했든 간에) 내에서 개인의 도덕적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다는 메시지가 된다. 이는 다시 은연중에 '현재의 상류층은 (어쨌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하류층도 (도덕적이든 아니든) 그들의 위치에 놓일 만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기존 질서를 부분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최소한 그 틀 안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로 비칠 위험이 크다.
하지만 뉴 오더는 질서 그 자체에 대한 영화이며, 현재의 계급 구조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닌 그저 기존에 존재했던 불공정하고 부패한 '질서'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라는 매우 공격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상류층이 상류층인 것은 도덕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그 질서 안에 있었기 때문이고, 하류층이 하류층인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감독은 개인의 도덕성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썩고 무너진 시스템과 질서 속에서는 무력하며, 그 파국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는다 선언하듯 말한다.
# 5.
그럼에도 반군은 새로운 체제, 이른바 뉴 오더가 아니다. 허술하고 감정적인 체제의 상호파괴적 폭주일 뿐이다. 사태를 수습하는 정규군이야 말로 영화가 끝난 후 멕시코에 자리하게 될 새로운 질서로서, 감독이 논평하고자 하는 대상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선량했던 인물들은 줄지어 쓰러진다. 하류층에게 진솔한 연민을 보였던 마리안과, 마리안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마르타와 크리스티안 모두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들을 죽인 것이 모두 반군이 아닌 정규군이라는 점이다. 마리안의 죽음은 은폐된 죽음이고, 크리스티안의 죽음은 조작된 죽음이며, 마르타의 죽음은 공식적 죽음이지만 그것을 구분하는 것에 의미는 없다. 어느 것 하나 정당할 것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질서의 이익에 종속시킨다는 면에서 조금도 다를 바 없음이다.
국가 권력이라는 이름 하에 체계화된 폭력과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을 비아냥으로 칭송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군악대의 음악은 이러한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새로운 질서'의 완성과 억압적인 통치의 시작을 알리는 불길함이다. 감독은 모두를 말살시키는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극심한 불평등이 초래한 파국이 결코 더 나은 세상을 담보하지 않으며, 인간 본성의 어둠과 질서의 부패가 결합할 때 어떤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도래하는지 검게 타오르는 불길로써 경고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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